정부가 산업구조의 혁신을 위해 총 72조원의 정책자금을 은행에 공급해서 일자리 17만개를 창출하는 금융혁신을 이루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를 위해 일괄담보제도의 정착과 기업의 미래 성장성까지 종합 평가하는 '통합여신심사시스템'을 구축해 금융시스템이 기업의 실패를 용인하는 새로운 금융문화를 뿌리 내리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정부의 확신에 찬 발표를 보노라면, 한국경제가 금융 감독 방식만 바꾸면 곧바로 금융혁신을 이룰 것 같다는 희망이 든다. 이 얼마나 반가워해야할 일인가?

그러나 안타깝게도 정부의 금융혁신안은 즉시 수술로 치료를 해야 하는 중환자에게 좋은 수술 장비를 마련하는 동안까지 참고 기다려 달라는 한가로운 대책이라서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가장 큰 이유는 한국의 은행이 지금까지 담보영업에 몰입했던 관계로 기업의 미래 성장성을 평가하는 신용평가에는 전문성이 턱 없이 부족해서 이들이 정부가 바라는 시스템을 구축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한국경제는 올 1분기(1∼3월)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추락했고 4월에는 경상수지도 적자가 나는 등 급격하게 추락하고 있고,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특히 내수분야는 지난10년 동안 승자독식의 낙숫물이론에 빠져서 대기업 위주의 수출잔치를 벌인 후유증으로 중소기업 30%는 한계기업으로 전락했고, 우량기업마저도 어려움에 처해서 성장 동력이 꺼져가고 있다. 그런데 정부가 기업신용평가 업무에 문외한인 은행을 환골탈태 시켜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들겠다는 것이니 이것이야말로 우물가에서 숭늉을 구하는 격이 아니겠는가?

한국경제의 특징은 재벌의 수직계열화로 표현된다. 이 시장독점구조는 시장지배자 이외에는 새로운 기술과 상품이 시장에 진입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코스탁에 상장된 기업일지라도 재벌계열사가 아니면 성장이 쉽지 않아 코스탁에 상장된 비 재벌계열사들은 최근 10년 동안 충격적인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M&A 시장에는 삼성, 현대의 1차 벤더가 매물로 넘쳐나고 있다. 상장된 회사의 10년 결과가 이런데 나머지 비상장 기업이야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이런 이유로 지난10년 동안 1만1,953개의 한국 기업이 국내시장을 떠나 해외에서 둥지를 마련했고, 국내중소기업이 보유한 좋은 기술은 대부분 외국기업에 매각되어 성장잠재력이 점점 고갈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시장독점의 수혜자인 재벌들은 950조원이 넘는 사내유보금을 쌓으면서 조세회피처에 송금한 자금이 무려 594조원에 이른다. 그중 현지에 직접 투자한 자금이 36조원이고, 165조원은 아직 국내로 안 돌아오고 있다.

하청에 하청으로 매출이 이루어지는 한국의 매출구조에서 이것을 역설적으로 분석해보면, 한국의 재벌들이 그동안 국내 중소기업을 상대로 얼마나 많은 “갑”질을 하고 수익을 독식했는지 한 눈에 알 수가 있다. 그리고 이렇게 많은 자금을 해외로 빼돌리면서 왜 국내투자는 외면했는지? 몹시 궁금하다. 그러므로 오늘과 같은 한국경제의 위기상황은 잠시 경기침체에 따른 불황이 아니라 10년 동안 성장잠재력을 훼손한 재벌의 불공정이 낳은 필연의 결과인 셈이다.

OECD에 따르면, 한국의 1분기성장률은 회원국 중 최하위 수준인 ―0.34%로 나타났다. 소득 수준이 높고 인구가 많은 미국(0.8%) 영국(0.5%) 독일(0.4%) 프랑스(0.3%) 이탈리아(0.2%)의 1분기 성장률에 비교해도 턱없이 낮다는 것이다. 투자부진에 빠져있던 한국경제가 수출이 줄어들자 매출과 생산성이 떨어지며 성장 동력의 부재를 드러내고 있다는 진단이다.

이처럼 한국경제는 지난 10년 동안 지속된 재벌들의 독과점횡포로 성장 잠재력의 상당부분을 잃었다. 그런데 이 성장잠재력은 한번 무너지면 회복하기가 어려워 이것을 극복하려면 많은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그러므로 정부는 더 늦기 전에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정부가 지금과 같이 입법기능이 마비된 국회를 바라만보며 가만히 있을 것도 아니고, 금융개혁을 준비하느라 골든타임을 놓쳐서도 안 된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폴 로머(Paul Romer) 교수는 한국 경제에 대해 “한국은 빠른 발전을 이뤄냈지만 최근 성장 속도가 현저히 둔화돼 성장전략을 재편해야한다”고 지적하며 “경제의 지속성장은 노동, 자본 같은 양적 투입보다 인적자본과 기술력 같은 질적 변화에 달려있다”며 “인적자본의 확충을 위해 교육에 투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해서 국가가 인적자본을 기업에 보내서 현장지식을 쌓고 공유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라”고 역설했다.

그는 결론적으로 기업 현장에서 축적된 지식이어야만 새로운 사업모델을 탄생시키는 ‘선 순환적 성장구조’를 만드는 아이디어를 낼 수가 있고, 그 인적자본이 산업전반에 확대되면 결국 전체산업의 혁신을 촉진할 수 있게 된다는 주장이다. 만약 우리 정부가 양질의 일자리와 산업구조의 혁신을 꾀할 의지가 있다면, 이 제안은 매우 실용적으로 보인다.

다만 한국경제의 독과점 상황을 고려해서 정부가 대기업과 그 계열사를 제외한 여타 기업에게 이 인센티브를 제공해서 인적자본의 확대를 꾀하는 것이 균형에 맞다. 그리고 이 인센티브를 통해 구축된 4차 산업 플랫폼은 대*중소기업이 상생하는 공생의 장으로 만들어야 한국경제가 빠른 시간에 성장잠재력을 다시 회복할 수가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인적자원을 지원받는 기업과 플랫폼에게 정부는 이사회를 개방하는 조건으로 노동자를 지원해서 일자리의 안전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이렇게 노동자를 기업경영에 참여시키면, 독일사례로 반추하듯 지금과 같은 강성노조의 필요성도 사라지게 된다. 그러므로 정부는 이 위기를 오히려 노동유연성을 확보하는 절호의 기회로 만들길 당부하고 싶다.

 

 2019년 6월 13일

한국창업정책연구원 부원장 이 순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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